보도자료


【인터뷰】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수원못골시장 상인회장

작성자
전국상인연합회
작성일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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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수원못골시장 상인회장

지역상권 이끄는 선제적 리더 '투명한 운영' 위해 최선 다해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은 재난소득의 사용처로 '농협 하나로마트'가 지정된 것이 오히려 지역골목상권을 죽이고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수원=서울뉴스통신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사진=김동초 대기자 = '다부진' 체구다. 잘 다듬어진 체형이다. '리틀자이언트'란 인상이 들었다. 인물 또한 '핸섬'하면서도 섬세하게 강하다.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을 본 첫 느낌이다. 역시 인터뷰 중간, 중간에 강인한 의지와 결기가 엿보였다. 그래서 젊다고 느낄 수 있는 나이에 그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거대 조직인 '경기도상인연합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게 되었다는 설득력을 풍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예리하면서도 편안하고 편안하면서도 정확하다. '인재'란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했다. 경기도와 상인들을 위해서 젊고 발랄하며 선제적이며 능동적인 리더십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스타일로 보인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 같은 이미지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필자가 만난 인물 중 몇 안 되는 '프로'(고수). 갑자기 출신지가 궁금해졌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완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섬의 거친 풍랑과 따가운 햇살 속에서 잘 다듬어진 피부와 체형을 갖춘 '戰士'(전사)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충환 회장은 72, 남도바다의 수려한 풍광과 정기를 온몸에 받고 완도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초·중 시절을 완도에서 보내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에서 전라도의 가장 큰 도시인 광주로 유학을 간 것인데 진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해서 다시 완도로 돌아와 아버님을 도와 수산물가공업 등 생업전선에서 열심히 뛰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의 부르심을 받고 충실하게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 완도에서 계속 아버님사업을 돕다 95년 경 수원으로 와 누님의 도움으로 오산에서 제과점을 오픈, 사업이 번창하며 수원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는 계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완도청년''迂餘曲折'(우여곡절)'水原入城記'(수원입성기)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수원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계기와 사연은? - 나름 상처를 받고 완도로 내려가 아버님의 사업을 도왔지만 일 년 반이 지난 99, 완도를 떠나 다시 수원으로 올라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으로 '못골'시장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누님의 소개로 '못골'시장에서 '' 출신답게 '건어물'을 취급하는 점포로 장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22년간 변함없이 단일 업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못골'시장에 점포를 오픈했을 당시만 해도 지금 시장상인생활은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한 교두보 정도로 생각하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시장을 떠날 생각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엔 시장의 모든 조직이 엉성했고 시장형태도 '좌판'을 주로 설치해 놓고 장사를 하는 전형적인 재래식 골목 형 시장이었습니다. 모든 환경이나 시스템에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상인들 간의 단합이나 화합도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해서 나중에 이곳을 벗어나 갈 때 가더라도 우선 속해있는 조직의 체계화와 조직의 정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상인회에서 '총무'직을 맡아 상인회의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힘썼고 환경개선과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상인회 회장직을 맡아 보람을 느끼신 일이 있다면? - 총무직 이전부터 느꼈던 생각이지만 우선 '못골시장'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변화를 이끌어내 시장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인들이 잘 정비된 제도와 편안한 환경에서 장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매출도 오르고 시장이 발전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2005년부터 '못골시장상인회'에서 총무 직을 맡아 최선을 다해 '시장 환경개선'과 시스템정비를 비롯해 제도개선에 주력했습니다. 2010년에는 '못골시장'상인회장에 취임해 수원시와 함께 전통시장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못골시장'이 수원의 전통시장 중 가장 경기가 활발한 시장, 점포당 매출이 가장 높은 시장, 방문객이 가장 많은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99년에는 시장 방문객이 1300명 선에 그쳤지만 지금은 평일에만 '못골시장'을 찾는 고객이 약 2만 명 정도이며 주말에는 수원의 먼 거리에서도 많은 고객들이 방문, 거의 3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시장을 찾습니다. 웬만한 기업쇼핑몰이나 대형마트를 능가하는 숫자입니다. 자부심을 느끼기에도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 '못골시장'1차 식품을 주로 취급 하며 반찬거리 등 수원전체 시장 중 가장 우수하고 품질도 좋으며 저렴하다고 합니다. 그런 관계로 시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고 이젠 시장전체 운영도 유지관리 쪽에 힘을 쓰고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주거방식도 변해 아파트 위주의 삶이 자동차를 이용한 쇼핑 쪽으로 전환이 되어가는 현실입니다. 전통시장을 포함한 '못골'시장도 시대트랜드 변화에 맞춰 항상 연구 개발해 나가야 합니다. 시대에 앞서는 선제적 대응이 필수인 시대가 왔습니다. 그 막중한 임무를 상인들과 함께 슬기롭게 풀어나갈 것입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못골'시장이란? -'시장'은 인생의 축소판이고 삶의 현장입니다. 시장 안에는 우리 ''의 모든 것, '喜怒哀樂'(희노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곳이 '못골'시장이고 '못골'시장이 저에게는 거의 인생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못골'시장에서 총무 직을 맡았을 때 아름답고 성실하게 직장근무를 하던 지금의 아내를 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고 어여쁜 딸도 '못골'시장에서 얻었으니까요. 젊은 시절, 패기와 객기가 넘쳐났을 때 정열과 열기를 모두 발산할 수 있었던 곳 그리고 그 에너지의 분출구를 '못골'시장이 모두 마련해 주었으니까 제게는 '못골'시장이 제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못골'시장과 경기도상인연합회장 취임의 연관성이 있으시다면? -저는 '못골'시장 상인회장을 역임하며 '경기도상인연합회'의 총무직도 맡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중앙업무나 시스템에 관해 일선에서 활동 할 수 있었고 많은 관련 인들과 폭넓은 인적 인프라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과 활동이 나중 경기도 상인연합회장에 선출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88, 경기도상인연합회 회장 선거 당시 경기도의 240개 시장 중 정회원만 114여명에 이르렀고 4명의 후보가 회장선거에 나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선거 회원들이 저를 회장으로 택해주신 것은 진지하고 순수한 제 열정과 젊은 패기를 높이 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못골'시장이 필요로 하는 점이 있으시다면? -'못골'시장은 수원에서 가장 번창한 시장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고객지원센터'가 없는 시장입니다. '못골'시장은 상인들 대부분이 임대로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항상 기반이 불안정한 상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해서 상인들의 '정주의식''주인의식' 고취를 위해서도 빠른 시일 내에 고객센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지매입과 건축·시설 등 소요경비만 20~30억이 필요합니다. 수원시와 힘을 합쳐 이 계획이 빠른 시일 내에 원만히 실행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경기도 상인연합회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느끼신 소감과 정책추진 방향은? -저는 경기도상인연합회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투명성'이었습니다. '소통과 화합'을 통한 '협력'의 바탕위에 '투명한 운영'을 하면 가장 이상적인 연합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공약을 이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연합회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어 원활한 행정지원이 이루어지고 합리적인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전국에는 상인연합회가 경기도와 서울·부산·광주·대전·대구를 비롯한 강원도·제주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 등 '17개의 지회'가 있습니다. 그 중, 경기도가 가장 주목받는 지회이며 모든 정책이나 행정이 타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각 지회에서 경기도를 '벤치마킹'하며 주목을 하고 있는 것은 '경기도 시장상권 진흥원'의 역할도 컸으며 그런 '경기도 시장상권 진흥원'의 태동(2019,11)에 한축을 담당 한 것에 대해 많은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한 초대 '경기도 시장상권 진흥원'원장이신 전 '임진원장'을 도와 '시장상인대출자금 준비서류'8가지에서 사업자등록증 하나로 간소한 것에 대한 보람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자랑스럽게 여겨집니다. '임진' 전회장과 함께 경기도 상인연합회의 발전에 보탬이 되게 한 것은 저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합니다. 또한 경기시장상권진흥원 이사로도 활동하면서 전통시장 및 상점가를 위한 활성화 뿐만 아니라 경기도내 골목상권, 소상공인 등 자영업을 하는 상인들을 위한 정책발국과 함께 많은 제안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 속에 '경기도상인연합회'가 공적으로 신임을 받기 시작했고 공무원들이 풀지 못하는 것을 의회에서 '대표상인'들이 풀어나가는 것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금 번 재난소득사용처의 '농협하나로 마트' 지정철회에 대한 격렬한 투쟁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로마트는 농협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취지에 맞게 농협이 영세한 생산자들에게 '판매장소'도 마련해주고 '판로도 확보'하며 저리로 '융자'도 해주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정책이었고 그로인해 많은 영세자영업자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로마트 설립의 근본취지와 달리 농협을 연계한 조직으로 이미 기업화되고 금융권화 되었습니다. 금 번 재난소득의 사용처로 '농협 하나로마트'의 지정이 오히려 지역골목상권을 죽이고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건 명백히 재난소득지원에 '정면으로 반'하는 지정입니다. 정부와 도, 그리고 지자체는 재난소득 사용처에 대해 보다 신중하지 않으면 그 지원의 의미가 거의 탈색된다고 봅니다. 재난소득사용이 활성화되는 5월 말부터 그 피해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극심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으로 확산이 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래서 일선에서 투쟁을 시작한 것이며 반드시 철회를 관철 시킬 것입니다.

경기남부 취재본부 김인종 기자 snakorea.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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