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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방방곡곡 장터거리  생각을 열다  전국 상인을 위한 종합 정보지 / www.semas.or.kr   2017년 8월 28일 월요일 / VOL.157   나의 시장            방방곡곡 장터거리                  21











                   부산 부전시장편                  “상인들이여, 쇼(Show)하라”






                                                                                               신선한 김밥을 더 맛있게 느껴지도록 하고 있
 도시가 잠든 새벽 시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시장이 있다.                                                             었다. 비단 김밥 가게뿐 아니라 정육점도 생선

 밭에서 바다에서 난 그날의 산물들이 시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동이 터올 때까지                                                   가게도 김밥집의 재료만큼이나 신선한 재료로
 경매를 통해 주 거래가 이루어지는 도매시장들이 그러하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대형 마트로, 가공 공장으로, 학교나 회사의 급식실로, 소매상들의 가게로, 식당으로…
                                                                                               둘째, 쇼하는 상점은 상품의 진열이 무릎 높이
 도매시장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조차
                                                                                               이상이었다
 도매시장의 물건들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다.
                                                                                                 특히 견과류가게의 상품진열이 눈에 띄었
 그 파급력을 생각하면 규모와 에너지가 새삼 놀랍다.
                                                                                               다. 호두, 잣, 땅콩 등 전통적인 견과류가 진
                                                                                               열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높이 쌓아올렸을
 보들레르는 ‘악의 꽃’ 서문에서 권태, 앙뉘(ennui)야말로 인간을 파괴하는 괴물이라 했다.
                                                                                               까 싶을 만큼 높은 위치에 견과류들을 진열했
 일상에 지쳐 권태에 직면할 때 도매시장의 새벽 시간을 생각한다.                                                           다. 상인의 답은 명쾌했다. “사람들과 눈높이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갈 새벽의 소산물들을 상상한다.   부산에는 부평깡통시장부터 자갈치시장,   내 시선엔 부전시장의 상인들은 쇼(Show)             를 맞춘 거죠!” 그렇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경매의 흔적이 쌓여있는 정적인 풍경에서 치열했던 새벽의 기운이 묻어난다.  국제시장, 해운대시장, 부산진시장, 동래시  를 하고 있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쇼를   상품 진열을 생각해보면 눈이 닿는 위치부터

                  장, 구포시장 등 사랑받는 시장이 넘쳐난다.               한다’는 것은 ‘어떤 행사나 퍼포먼스를 한다는             좋은 상품, 팔고자 하는 상품, 잘 팔리는 상품
                  부산의 전통시장은 부산만의 활력을 가지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던 일상             들을 진열한다. 허리를 굽히지 않고, 두리번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이 살아있다면 이런               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죽집 골목             거리지 않아도 내가 사고자 하는 물건과 상품
                  느낌이라는 걸 전국에서 가장 잘 보여주고 있               에 가면 가게 앞에서 큰 주걱으로 죽을 쑤고,             이 가까이에 보일 때 소비자는 망설이지 않고
                  는 도시이기도 하다.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               채소 가게에 가면 채소들이 밭에 있었던 것처              지갑을 연다. 부산 부전시장에선 견과류 가게
                  시장이 외국인들에게 사랑 받듯 부산의 부산                럼 세워져 진열되어 있다. 또 정육점에서는               뿐 아니라 건어물가게, 말린 고추 파는 가게
                  부평깡통시장과 자갈치시장은 국내외 관광객                 주문이 밀려드는 것에 맞춰 발골을 하고, 견              도 높은 진열대와 조명을 잘 조화시켜 상품을
                  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렇다면 반대로 부산               과류를 취급하는 상회에서는 땅콩을 직접 볶               판매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장은 어딜까 궁금했                 고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상이지만 부전               이외에도 쇼하는 상점들은 상품에 대한 전

                  다. 묻고 물어 부산 토박이들의 추천을 받아               시장은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시장을 넘어서               문성이 뛰어났고 철학을 가지고 장사를 했다.
                  부전시장을 알게 되었다.                          서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시장이다.                  대표적으로 채소가게가 그러했는데 아침마다
                    부전시장은 서울의 경동시장, 수원의 남문                부전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1,500원짜리              상인들은 채소를 세로로 세우고 있었다. 가로
                  시장, 대구의 서문시장, 청주의 육거리시장,               콩죽을 파는 할머니를 찾아 나선다. 싸서라기              로 뉘어 파는 것과 세로로 세워 파는 것이 별
                  대전의 중앙시장처럼 여러 개의 시장이 연합                보다 전국에서 콩죽을 파는 상인을 만나기가               차이가 없을 듯 하지만 상인의 대답은 흥미로
                  해 구성된 대형 전통시장이다. 부전시장을 구               쉽지 않기 때문인데, 부산 부전시장과 청주               웠다. “밭에서 상추는 세로로 자랍니다. 그런
                  성하고 있는 시장은 부전시장, 서면종합시장,               육거리시장에서 콩죽을 만날 수 있다. 할머               데, 배송과정에서 상추들이 가로로 뉘어지거

                  부전상가, 부전종합상가, 부전인삼시장, 부산               니는 새벽 5시엔 부전시장에서 죽집이 늘어               든요. 그걸 자연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환
                  전자종합상가로  총 6곳의 시장상권이 결집                서 있는 죽거리에서 장사를 하시지만 상인들               경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이게 헛짓거리 일
                  되어 부전마켓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이 문을 여는 시간인 8시를 넘기면 죽이 담긴             거 같지만 구매하시는 분들은 알죠. 채소가게
                  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 전쟁 때 피난열차가               리어카를 끌고 시장 곳곳을 누비신다. 콩죽을              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배려한 상인의 마음을
                  서던 부전역 바로 앞 역전시장으로 시작되었                맛보며 부전시장이 흥하게 하는 쇼하는 상인               요.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했기
                  기에 부산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들의 특징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때문에 더 맛나기도 합니다.”
                    그런 부전시장에 어린아이들이 많이 보였                                                        이러한 상인들이 있기에 부산 부전시장을
                  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온 손자, 손            첫째, 쇼하는 상인들의 재료는 신선했다                 대를 이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 당
                  녀들도 있고, 엄마, 아빠와 먹을거리를 사러                예를 들면 부전시장의 김밥 가게는 당근과               연해 보였다. 부산에서 꼭 한 군데의 시장만

                  나온 아이들도 보였다. 부전시장은 부산 사람               우엉, 달걀지단과 갓 지은 밥이 김을 모락모락             을 견학해야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철
                  들에겐 대를 이어 찾는 시장이라 했다. 그렇               내며 지나가는 모든 이를 유혹했다. 줄을 길게             학을 가지고 청결함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쇼
                  다면 이 시장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               늘어선 사람들은 신선한 재료로 김밥 마는 모              하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부산 부전시장의
                  어떤 상품을 팔길래, 어떤 상인들이 장사를                습을 보며 한 줄 살 걸 두 줄 사고, 두 줄 살 걸         상점들을 추천하고 싶다.
                  하길래 대를 이어 찾아올까.                        세 줄 샀다. 기다리며 자극된 후각이 방금 만                              전통시장 도슨트 이희준




 경매가 끝난 후 인천종합어시장. 김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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