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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객주장터 아름다운 시장 전국 상인을 위한 종합 정보지 / www.semas.or.kr
인간의 선함과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진실함을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가장 즐겨 그린다.”
표현하려고 했던 박수근의 인물은 소녀와 중년 여성, 중년 남성이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장소에서
성실한 노동을 수행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 장소는 가족을 구성하는 집 앞
박수근 화백의 작품들 골목이거나 생계를 위한 장터와 휴식을 위한 집을 이어주는 거리 그리고 마을 또
는 시장이다.
박수근 (1914~1965)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
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화단에 모습
을 알렸다. 해방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
선, 미술협회전람회에서 입상했다. 1959년 국전 추천 작
가가 되었으며 1962년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서민적 정서를 거친 재질감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한국적
인 아름다움의 전형을 만들어낸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노상]은 경매에서 10억 4천만 원이라는 한국 최고가 기
록을 세웠다.
박수근 [노상] 1957년, 캔버스에 유채, 31.5x41cm
시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 박수근 작품의 예술성과 인간애가 표 향으로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중세 유럽 의 형태를 지향하면서 견고한 화면을
게 하는 ‘창신동 시장의 여인들’ 현된 곳이다. 시장과 시장의 사람들, 특 의 기독교 미술과 비슷한 ‘성서’적 분위 구축하고 있는, 박수근의 탁월한 조형
히 시장의 여인들을 주제로 한 그의 연 기가 감지되기도 하고, 화강암 바위에 감각과 감수성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박수근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도 작들을 감상하면서 우리네 시장의 의 새겨진 마애불 같이 움직일 수는 없지 “아버지는 어머니와 장보러 가시면
자신만의 그림을 찾아내, 어렵고 힘든 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만 따스한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박수 한 행상 아주머니에게 한꺼번에 사시
시대를 묵묵히 살아간 사람들의 꿈과 근은 진정한 민중 화가였으며 박애정신 지 않고 하나만 사시고, 다른 행상 아
의지를 선하고 진실하게 담아냈다. 그 “나는 자신이 본 것을 솔직하게, 의 실천자였다. 주머니에게서 또 하나 사시고 그러셨
의 그림은 50~60년대 한국의 시대적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훌륭히 어요. 왜 그러시냐고 묻자 ‘한 아주머
초상이고 가장 고유한 화제와 화법이 말하고 싶다” 소년 박수근의 소 박수근이 나고 자란 아름다운 양 니한테서만 사면 다른 아주머니들이
라는 평을 받는다. 한국인이 가장 공 망이 된 밀레의 소망 구의 바위와 돌, 화강암의 전설 섭섭해 할 거야.’라고 하셨어요. 당신
감하는 국민화가가 되었다. 께서도 가난하셨지만 길에서 장사하는
박수근의 그림은 화가의 주관적 감 ‘화강암 질감’이라고 불리는 박수근 가난한 분들에게 늘 마음을 쓰셨어요.”
박수근 작품의 배경은 50~60년대 정이 이입된 대상으로서의 서민이 아니 특유의 거친 화면은 마치 포화상태에
시장 상인들과 행상들이다. 그가 그 시 라, 모든 개인적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 꽉 차 있는 것처럼 캔버스 표면 전체를 -박수근 화백의 아들인 박성남 화백의
절을 보냈던 창신동은 봉제 일을 마치 한 객체로서의 서민의 모습을 그린다. 덮고 있다. 이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 기자간담회 중에서
고 시장에 들러 장을 보는 어머니들을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 속 인물들은 고 그림 속 인물들을 훈훈한 인정으로 감
비롯해 시장 상인들이 많았다. 그곳은 정된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기 싸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작 서순정 기자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터이자 일터였다. 념비적인 형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영 품 [노상]은 대칭적인 구조 속에 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