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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방방곡곡 장터거리 살아있는 오일장 전국 상인을 위한 종합 정보지 / www.semas.or.kr
이른 새벽이 제일 핫한
만물백화점
순창오일장
전라북도 순창에는 백화점이 없다. 순창에서는 오일장이 백화점도 되
고 편집숍도 된다. 세일 기간 백화점에서 사람에 치이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오일장에서는 북적북
적 사람에 치이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기분 좋은 부대낌이
다. 5일마다 열리는 장이기 때문에 날짜를 맞춰 방문하는 그 특별함은
선택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희소함의 가치가 있다. 1930년 전후에 형
성되어 광복 이후에도 꾸준히 장이 섰고, 지금은 1, 6일에만 열리는 오
일장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순창오일장에서 제일 먼저 만난 풍경
은 버스정류장이다. 이미 장을 다 보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
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계시는 버스정류장에서 유난히 일찍 시작하는
오일장의 아침을 실감한다.
파란 하늘에 알록달록 천막과 파라솔, 특별한 설렘
본격적으로 장터에 들어서면 가슴이 설렌다. 유난히 쨍한 하늘에 알록
달록 천막과 파라솔들이 가득하다. 일반 전통시장과는 또 다른 오일장만
의 운치이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 같기도 하고, 소풍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도시의 전통시장과는 확실히 다르다. 규모가 아주 큰 시장은 아니지만 농
작물은 물론이고 모종이나 꽃을 파는 가게들도 많고, 고무장화, 농기구나
가마솥, 참빗과 수수빗자루 같은 것들도 눈에 띈다.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정취에 취해 덥석 집어 오고 싶다. 잘 모르는 것
들,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이 가득한데도 낯설지가 않다. 오일장에서
뿜어내는 정취, 그 설렘의 근원이다.
할머니가 기르고 다듬어 주시는 것들의 가치 제철 여름 도라지를 들고 나오신 순창오일장의 할머니의 미소가 정겹다. 김도림 기자
순창 하면 고추장이지. 그렇다. 순창은 고추장의 고장이다. 그러나 고추
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창오일장에는 유명한 순대 골목이 있다. 피순대
를 듬뿍 넣어 끓인 순대국밥, 새끼보라는 간판이 가득하다. 새끼보는 암뽕
이라고도 부르는데 암퇘지의 자궁으로 전라남도에서 즐겨 먹는 부위이다.
그러나 순대국밥은 순창오일장의 주인공이 아니다. 순창은 산지와 구릉이
많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고추와 마늘, 콩, 밤 등 밭작물들이 특별히 싱싱
하고 좋다. 얼핏 봐도 좋은 상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것이야말로 순창오일장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할머니들이
직접 기르고 캐고 이고 지고 나와 그 자리에서 하나하나 다듬어 주신다.
쌓여 있는 콩깍지만큼 작은 소쿠리들에 예쁘기도 한 콩들이 수북하다. 어
떻게 먹는 게 맛있는지도 알려주시고, 손녀 졸업식에 다녀온 얘기도 해주
신다. 이제 나이 들고 꺼메져서 밉다며 웃으시는 모습이 순창오일장의 진
짜 가치이다.
도시에서는 시장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수 빗자루 활력을 더하는 알록달록 천막과 파라솔